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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목이 하루 만에 계좌의 수익률을 통째로 흔든 날이 있었습니다. 기업 자체가 문제였던 게 아니었습니다. 계좌 전체가 그 하나에 너무 쏠려 있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보다 "한 기업의 변수가 전체 자산을 삼키지 못하는 구조"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은 기업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던 시절의 리스크 관리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 저는 집중투자를 선호했습니다. 여러 종목으로 나눠 사는 것보다 확신이 드는 기업 하나를 제대로 고르는 쪽이 수익률에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사업보고서도 읽고, 분기 실적도 꼬박꼬박 확인하면서 나름대로는 꽤 성실한 투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그 판단이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걸 보면서 "역시 좋은 기업을 제대로 고르면 된다"는 확신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분기 실적 발표일이 왔습니다.
시장 컨센서스(consensus), 즉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한 실적 평균치를 기업이 소폭 밑도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컨센서스란 시장 참여자들이 기대하는 기업 실적의 평균 전망치를 말합니다. 기업이 망한 것도 아니고 매출이 급감한 것도 아니었는데, 주가는 하루 만에 크게 밀렸습니다. 그리고 계좌 전체 수익률도 함께 밀렸습니다.
그제야 문제가 보였습니다.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리스크 관리란 투자에서 예상치 못한 손실이 전체 자산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전략을 뜻합니다. 저는 좋은 기업을 찾는 데는 공을 들였지만, 그 기업 하나가 틀렸을 때 계좌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는 전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실적, 경쟁 심화, 규제 변화, 경영진 교체처럼 투자자가 미리 알기 어려운 변수는 언제든 생깁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좋은 기업을 고르는 능력"과 "그 기업이 흔들려도 버티는 구조를 만드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종목 수를 늘렸는데도 ETF 비중을 따져보니 결과가 달랐습니다
집중투자의 한계를 느낀 뒤 저는 종목을 하나씩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기업, AI 관련주, 대형 기술주를 차례로 담았습니다. 계좌에 종목 이름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분산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유 종목의 업종을 표로 정리해보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름은 다 달랐지만 대부분이 미국 기술 섹터에 몰려 있었습니다. 시장이 흔들리는 날이면 종목들이 마치 한 팀처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상관관계(correlation)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상관관계란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상관관계가 높은 자산만 모아놓으면 종목 수가 많아도 실질적인 분산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제 계좌가 딱 그 상태였습니다.
그다음에는 ETF(Exchange Traded Fund) 구성 종목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ETF란 특정 지수나 자산을 추종하도록 설계된 펀드를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만든 상품입니다. 미국 기술주 ETF를 보유하면서 동시에 빅테크 개별 주식을 여러 개 담고 있으면, ETF 안에 이미 포함된 종목을 중복으로 사는 셈이 됩니다. 업종 편중은 더 심해지는 구조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뒤부터 저는 새 종목을 매수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묻습니다. "이 종목이 지금 계좌에 없는 새로운 역할을 하는가?" 비슷한 성격의 자산이 이미 많다면 추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래 기준을 먼저 확인합니다.
- 업종이 기존 보유 종목과 지나치게 겹치지 않는가
- 국내 자산과 해외 자산의 비중이 적절히 나뉘어 있는가
- 개별 기업과 ETF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 보유 종목들 사이의 상관관계가 지나치게 높지 않은가
이 기준을 적용하고 나서부터는 시장이 한쪽으로 크게 쏠리는 날에도 계좌 전체의 변동성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안정됐습니다. 불안감이 줄어드니 섣불리 매도 버튼을 누르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었습니다.
과거 하락장 데이터로 장기투자에서 분산의 의미를 다시 봤습니다
분산투자의 구조를 갖춰가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정말 수익률에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심리적 안정감만 주는 걸까. 그래서 과거 두 번의 주요 하락 구간을 직접 비교해봤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S&P 500 지수는 약 34% 급락했다가 불과 5개월 만에 전고점을 회복했습니다(출처: S&P Dow Jones Indices). 반면 같은 시기 특정 개별 기업 중에는 1~2년이 지나도 전고점을 되찾지 못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수는 빠르게 회복했지만 개별 기업은 회복 속도가 제각각이었습니다.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기준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 금리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설정하는 정책 금리를 말합니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의 밸류에이션(valuation), 즉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의 주가 적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술 성장주가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나스닥 종합지수는 연간 약 33% 하락했습니다(출처: Nasdaq). 이 시기에 채권이나 배당주, 에너지 섹터처럼 성격이 다른 자산을 함께 보유하고 있었다면 계좌 전체의 낙폭은 훨씬 작았을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분산투자가 항상 수익률을 높여주는 건 아닙니다. 강한 상승장에서는 한 종목에 집중한 계좌가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산투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수익률 극대화가 아닙니다.
하락장에서 계좌가 반 토막 나면 심리적으로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버티지 못하고 저점에서 매도하는 순간, 장기투자는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분산투자의 진짜 역할은 하락폭을 줄여서 투자자가 시장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분산투자를 하면 수익률이 낮아지지 않나요?
A. 강한 상승장에서는 집중투자 계좌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산투자의 목적은 수익률 극대화가 아닙니다. 하락장에서 낙폭을 줄여 투자자가 저점 매도 없이 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장기투자에서는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Q. 종목을 10개 이상 사면 충분히 분산된 건가요?
A. 종목 수보다 종목 간 상관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반도체, AI, 대형 기술주처럼 같은 섹터 안에서 여러 개를 보유하면 시장이 흔들릴 때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분산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업종, 국가, 자산 성격이 서로 다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Q. ETF 하나만 사도 분산투자가 되나요?
A. ETF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S&P 500처럼 500개 기업을 추종하는 ETF는 개별 종목 리스크를 크게 줄여주지만, 특정 섹터 ETF는 해당 업종에 집중된 구조라 분산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ETF를 매수하기 전에 구성 종목이 어떤 업종에 얼마나 쏠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분산투자를 하면 하락장에서 손실을 완전히 막을 수 있나요?
A. 손실을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렵습니다. 시장 전체가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분산투자도 손실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업종, 국가, 자산 성격이 다른 자산을 함께 보유하면 낙폭을 줄이고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분산의 목표는 손실 제로가 아니라 감당 가능한 수준의 손실입니다.
결론
한 종목이 계좌를 크게 흔들던 날, 저는 투자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습니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업 하나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계좌 전체가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가 더 먼저입니다.
분산투자는 수익률을 포기하는 전략이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왔을 때 투자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지금 보유 종목의 업종 구성과 ETF 중복 여부를 한번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한쪽에 쏠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