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없어도 돈을 맡기고 빌리고 결제할 수 있다면, 은행은 왜 존재해야 할까요? 저는 최근 이 질문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 국내 은행 시스템 전반이 구조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특히 한국처럼 예금 기반 대출 의존도가 높은 시장에서는 그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진단입니다.

예금 이탈이 왜 이렇게 무서운가
일반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그냥 편리한 디지털 결제 수단"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자료를 살펴보면서 그게 생각보다 훨씬 깊은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시킨 가상자산으로, 가격 변동성이 없어 실제 결제나 송금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스테이블코인이 대중화되면, 은행에 묶여 있던 예금이 발행사의 준비금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액이 2,000억 달러 늘어날 경우 은행 시스템 전체의 대출이 650억~1,410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결제 수단 하나가 바뀌는 것뿐인데, 대출 공급이 이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됐거든요.
핵심은 예대율 구조에 있습니다. 예대율이란 은행이 보유한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예금이 100원이면 그걸 재원으로 얼마나 빌려줄 수 있냐는 지표입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원화 예대율은 100~110% 수준으로, 글로벌 평균인 약 80%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이미 예금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내주고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예금이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대출을 줄이거나, 더 비싼 이자를 주고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신용 공급 위축과 고비용 조달이라는 이중 압박이 동시에 오는 구조입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이 문제를 정식으로 보고서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이게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현실적인 리스크로 관리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저는 봅니다(출처: 한국금융연구원).
신용 위축을 넘어 금융 혁신으로 가려면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직접 체감한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급여가 들어오면 은행 앱을 열어서 송금하고, 이체하고, 카드 실적을 체크했습니다. 지금은 그 흐름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액 결제나 송금은 간편 결제 플랫폼을 먼저 찾게 되고, 은행 앱을 여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쌓이면 어떻게 될지, 스테이블코인 관련 자료를 보면서 저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은행의 경우 이 문제가 더 직접적입니다. 인터넷은행은 요구불예금 의존도가 높습니다. 요구불예금이란 고객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예금으로, 이자 부담이 낮아 은행 입장에서는 저원가 조달 수단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기능을 흡수하면, 이 저원가 자금 기반이 흔들리고 수익성에 직격탄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의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성장할 경우, 인터넷은행의 총 자산이익률(ROA) 하락폭이 시중은행의 수배에 달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ROA란 보유한 총자산으로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로, 이 수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건 사업 자체의 수익 구조가 흔들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스테이블코인을 무조건 위협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기술 변화가 기존 산업을 완전히 대체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역할이 재편되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왔습니다.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안에서 역할을 찾는 방법은 실제로 몇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 시중은행은 컨소시엄을 주도하거나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생태계를 선점하는 전략
- 인터넷은행은 스테이블코인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서 조달 구조를 다각화하는 방식 병행
- 모든 은행 공통적으로, 결제 중개 수수료 의존에서 벗어나 자산관리·대출 심사 역량 강화로 수익 구조 재편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스테이블코인 도입 초기 단계에서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소비자 결제와 기업 간 B2B 거래로 확산되는 2단계가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시점이 오기 전에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는 게 제가 이번 자료를 보고 느낀 핵심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기술적 편의성을 제공하는 건 분명하지만, 소비자 보호와 제도적 안전망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라 리스크 이전에 그칠 수 있습니다. 편리함과 안전성은 교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함께 갖춰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은행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겠지만, 기술이 신뢰를 대체할 수 없다는 본질도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앞으로 금융 생태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금융 의사결정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